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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_ REST IN PRIDE #1 : BLACK SCALE

한때 쟁쟁한 스트릿 브랜드들 사이에서 선두를 달렸던 블랙 스케일. 그들은 브랜드 런칭 이후 약 2017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며 패션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고 많은 업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현재 브랜드의 모습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블랙 스케일의 과거 시작부터 현재의 모습까지 함께 만나보자.

브랜드가 탄생하기까지 

먼저 블랙 스케일이라는 브랜드를 다루기 전에 공동 설립자인 Michael ‘MEGA’ Yabut(마이클 ‘메가’ 야붓’)과 스케이트 브랜드 HUF(허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원래 허프 샌프란시스코 스토어를 자주 방문했던 스니커를 수집하는 평범한 손님이었다. 그러다 허프의 수장이었던 고 Keith Hufnagel(키스 허프나겔)을 비롯해 허프 크루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스토어 매니저가 공석이 되자 평소 그의 열정을 높게 사던 키스는 메가에게 허프의 매니저 자리를 제안했고 그는 허프 크루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된다. 그 후 허프는 멀티샵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며 커졌고, 그 과정에서 메가는 키스에게 매장 및 브랜드 운영, 유통 등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메가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은 열정이 생겼고 낮에는 허프 매니저 일을, 밤에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시간을 쏟았다. 이를 지켜본 키스는 아낌없는 응원과 함께 그가 만든 옷을 허프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 출시한 티셔츠는 주변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다른 거래처에도 공급되면서 점차 규모를 키워나갔다.

이후 그는 새로운 허프 매장 오픈으로 2007년 미국 LA로 넘어간다. 그곳에서 메가는 Rob Garcia(로버트 가르시아)를 만나 블랙 스케일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그러던 중 브랜드의 잠재력과 비전을 알아본 허프의 수장 키스는 메가에게 허프를 떠나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하라고 제안했고, 그 제안을 따른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브랜드 구축에 나선다. 이것이 바로 블랙 스케일의 시작이었다.

블랙 스케일 의미 

메가가 허프 매장에서 티셔츠를 처음 출시했을 당시 브랜드 이름 없이 검은색 새틴 라벨만 존재했다. 제품이 처음 나온 후 한참 시간이 지나고 브랜드에 마침내 ‘블랙 스케일’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블랙 스케일에서 블랙은 1차원적으로 검정이라는 색이 아닌 그 어떤 색도 남아있지 않음을 표현했고 스케일은 사람의 여생을 의미하며, 어디로 가야 어떻게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지 찾으려고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냈다. 또한 로고에는 A를 뒤집은 모양인 V를 사용했는데 이는 대칭적이지만 균형 있는 모습을 뜻한다.

블랙 스케일의 브랜드 특징 

블랙 스케일은 종교, 정체성, 정부, 죽음 이름만 들어도 꺼림칙하고 자극적인 4가지 메인 테마를 컬렉션에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메가는 고서를 즐겨 읽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사타니즘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디자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스칸다나비아 메탈, 데스메탈 아트, 올드스쿨 언더그라운드 메탈 밴드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블랙 스케일의 컬렉션을 보면 대부분 프린팅은 악마, 해골, 육망성, 염소, 기하학 패턴, 구시대 서양 미술 등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이는 처음에 소비자들에게 굉장히 자극적이며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반복적인 디자인은 후에 브랜드 몰락에 하나의 원인이 된다.

블랙 스케일 컬렉션은 검정과 흰색이 주로 사용됐고 색채가 없는 게 특징인 만큼 두 배로 좋은 소재와 높은 퀄리티 그리고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시즌 컬렉션도 티셔츠, 맨투맨, 후디, 자켓, 스니커즈, 실버 주얼리, 악세서리 등 다양한 구성으로 볼륨 있게 진행해 대중들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메가는 매 시즌 컬렉션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형상화해 감추고 대중들에게 직접 그 의미를 찾는 과제를 던졌다. 또한 컬렉션이 드롭되기 전 블랙 스케일의 모든 직원은 제품이 가진 스토리에 대한 교육을 매번 받는다고 알고 있다. 그만큼 블랙 스케일은 단순히 의류가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포함하고자 했다.

ASAP ROCKY 파급효과 

블랙 스케일이 만들어지고 약 3년 후 메가는 한창 뜨기 시작했던 ASAP ROCKY(에이삽 라키)를 알아보고 그에게 파트너이자 스폰서를 제안했고 그렇게 그들은 브랜드와 엔터테이너로서 협업을 보여주게 된다. 파트너쉽이 유지되던 중 이때 라키는 폭발적인 반응을 받은 비공식 컴필레이션 <DEEP PURPLE>과 첫 싱글 <PESO> 그리고 <PURPLE SWAG>을 공개하며 스타덤 반열에 오른다. 이후 오래되지 않아서 둘의 파트너쉽은 끝났지만 에이삽 라키를 통해 블랙 스케일은 미국에서 브랜드 이름을 더욱 알릴 수 있었고 지금까지 어떤 홍보보다도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패션에 어느 정도 관심 있었던 사람은 한번쯤  VSVP 로고와 큼지막한 영문이 자수 된 모자를 국내에서도 자주 접했을 것이다. 한창 패션의 아이콘으로 물올랐던 빅뱅의 지드래곤을 포함해 수많은 연예인도 함께한 그 유행이 바로 블랙 스케일과 에이삽 라키가 처음 만들어 낸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 

블랙 스케일 X [             ]

에이삽 라키의 파급효과를 더 해 브랜드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블랙 스케일은 다양한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협업 러브콜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허프, 다이아몬드 서플라이, 꼼데스뻑다운 등 스트릿 브랜드 중심의 협업이 진행됐다. 그 후 리복, 팀버랜드, 심지어 아디다스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포함해 쥐샥, 뉴에라, 모타운 레코드, 베이프, 스투시 등 다양한 특성이 있는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고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베이프와 협업했던 카모 후드 양옆에 달린 문양이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베놈의 눈과 비슷한 게 기존 베이프 샤크 후드와 다르게 멋있어서 마음에 무척 들었다. (하지만 너무 비싸 결국 못 샀다고 한다.)

현재 

블랙 스케일은 에이삽 라키와의 협업으로 엄청난 인지도를 얻고 난 후로도 그들만의 철학이 담긴 컬렉션을 지속해 전개했다. 하지만 파이렉스, 오프 화이트, 피어 오브 갓, 피갈레 등 새로운 하이-스트릿 패션 브랜드가 유입됐고 점점 패션 시장의 판도는 바뀌어 갔다. 블랙 스케일은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뒤처지며 고객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그 변화에 맞춰 그들이 추구했던 스토리텔링이 있던 ‘작품’이 아닌 세련되고 현재의 트렌디한 방향을 쫓았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이미 고객들은 발을 돌렸고 너무 늦었던 것이다.

현재 블랙 스케일은 매 시즌마다 컬렉션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브랜드가 아닌 아티스트와 협업 작업도 지속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컬렉션에 포함됐던 바시티 자켓이나 일부 팬츠 같은 경우 요즘 시대 트랜드와 블랙 스케일 고유의 색깔이 잘 묻어나는 것 같았지만 그 외 다른 아이템은 평범함 또는 그 이하라고 감히 말해본다. 필자가 봤을 땐 그들은 감을 못 잡고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블랙 스케일 X 에이삽 라키 후드를 사려고 이곳저곳 발품 팔며 돌아다녔던 장본인으로서 그들의 행보에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패션은 돌고 돈다고 블랙 스케일이 언제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 그때가 다시 온다면 몇 년째 서랍에 박혀있는 VSVP 회색 후드가 빛을 발하리.

R.I.P BLACK SC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