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신형섭
얼마 전, 이효리가 6년 만의 공백을 깨고 새로운 싱글 ‘후디에 반바지’로 컴백해 화제가 되었다. 2017년 정규 앨범 ‘BLACK’ 발매 이후 가수로서 첫 공식적인 활동의 시작이다. 컴백 소식을 알린 이효리는 많은 매체와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음악을 만들어 낸 프로듀서 신형섭이 있었다.
곡 하나를 완성하는 과정에는 가수, 작곡, 작사, 편곡 등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거친다. 그리고 그 시작과 마무리에는 항상 프로듀서가 있다. 항상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들과 달리 그들은 곡 한쪽에 이름만을 올리고 묵묵히 뒤를 지킨다.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요리사로 빗대어 말한다면 여러 재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합하고 적절한 조리법을 통해 특별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데, 이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활용하여 우리의 마음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우리가 항상 듣고 있는 그 ‘음악’을 창작한다.
우린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만의 작업물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신형섭을 만나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키메이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로듀서이자 트랙메이커 신형섭입니다. 힙합을 메인으로 R&B, K-POP 등 여러 장르를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다.
왜 키메이커인가.
중학생 때 영화 매트릭스2를 봤는데 키메이커라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다. 키메이커는 세계를 구하는 데 필요한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주인공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결국 총에 맞아 죽긴했지만.. 아무튼 이와 비슷하게 프로듀서 또한 아티스트의 방향을 결정지어 주고 어울리는 곡을 만들기까지 도움을 주는 그런 역할이 영화 속 키메이커랑 비슷한 것 같아 그 이름을 그대로 따오게 됐다.
최근 참여했던 이효리의 <후디에 반바지>가 나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어떻게 지내는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또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고,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별히 별일은 없다. 하하.
기분이 어떤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셀럽 인스타 피드에 올라간 기분 말이다. 주위 반응은 어땠는가.
얼떨떨했다. 사실 효리 누나가 같이 찍은 사진을 태그까지 해서 올리실 줄 상상도 못했다. 많은 팬분이 계정에 들어오셔서 팔로우해 주셨고 업계 관계자분들과 음악 하는 동료들도 연락이 많이 왔다 무엇보다 가족이 정말 좋아했다.
어떻게 인연이 닿아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일단 효리 누나 곡을 작업하게 된 계기는 행주형과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행주형은 쇼미더머니 때 ‘호랑나비’라는 곡을 같이 작업하면서부터 알게 돼서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행주형이 댄스가수 유랑단이란 TV프로에서 효리 누나를 포함한 멤버 단체곡의 작사를 맡았던 적이 있다. 효리 누나가 그때 행주 형의 가사와 그 외 디테일한 부분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시며 컴백곡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근데 또 마침 행주형이 그 당시 같이 작업하고 있는 사람이 나여서 협업 제안을 받게 됐다. 나는 당연히 수락했고 그 이후로 곡 레퍼런스 구상부터 주제, 방향성 등을 논의하면서 트랙을 정했다. 어느 정도 틀이 나왔을 때 나는 편곡 작업을 들어가고 행주형은 곡에 멜로디 붙이고 불러보면서 작업을 했다. 그때가 7월이었다.
이후에 어떻게 진행됐나.
효리 누나랑 소속되어 있는 안테나 뮤직 쪽에 노래를 보냈는데 다행히 마음에 들어 하셨고 9월 초쯤에 이 노래로 발매하기로 확실하게 픽스됐다. 그때부터 곡 완성도를 높이고 세션 받아 녹음하고 마지막으로 누나 보컬도 녹음하면서 곡을 완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강렬한 댄스힙합곡이 아닌 편안한 무드의 곡이다. 후디에 반바지라는 주제로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
후디에 반바지라는 키워드는 이미 행주형이 생각하고 있었던 아이디어였다. 거기에 맞는 트랙 레퍼런스를 찾다 여유로운 분위기의 이지리스닝 팝으로 방향을 정해서 시작하게 됐는데, ‘굳이 꾸미거나 멋 내지 않아도 이미 나 자체로 멋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이효리라는 아티스트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느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컴백곡으로 애니클럽이나 텐미닛같은 강렬한 힙합곡을 생각했을 것 같은데 일단 6년만에 가요계 복귀이기도하고, 정규앨범이 아닌 복귀를 알리는 싱글인 점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 효리누나도 그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고. 앞으로 이효리란 아티스트가 보여줄 음악에서 더욱 다양하고 많은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후디에 반바지] 이후에 작업 요청이 들어온 게 있었을까? 작업 요청이 들어올 때 고려하는 부분이나 신형섭이 정해둔 특별한 기준이 있을까.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음악 활동하는 몇몇으로부터 이번 노래 잘 들었고 나랑도 같이 해보지 않을래? 정도의 연락이 왔었다. 작업 선정에 대한 특별한 기준은 없는 것 같다. 작업이 들어오면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다 하는 편이다. 일단 나에게 작업을 요청하는 부분이 감사한 일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 일단 한다. 굳이 고려한다면 요청이 온 작업을 통해 나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지 정도?
작곡을 할 때 신형섭에게 제일 중요한 요소와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리고 작업을 해 나가는 프로세스는?
사실 대부분의 작곡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내용일 거 같은데 사실 래퍼런스 곡을 듣는 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작업을 할 때 순서가 보통 아티스트나 소속회사에서 어떤 느낌의 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먼저 제시를 하기 때문에 비슷한 그것과 비슷한 무드의 래퍼런스를 많이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레퍼런스에서 특정한 부분이나 포인트를 분석하면서 작곡가 자신의 방식과 느낌대로 곡에 적용시해서 작업하는 거지. 나는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여행같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런 부분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말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영감을 좀 많이 얻는 편인 것 같다. 그리고 같이 작업하는 사람과의 시너지, 한마디로 좋은 아티스트와의 협업. 이것만 한 영감의 원천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거쳐왔던 작업들 중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을까.
크루셜스타의 믹스테입 앨범 ‘Drawing#3: Untitled’를 작업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거 같다. 일부 프로듀싱을 포함해 앨범 전체적인 녹음이랑 후반 믹스 작업을 크루셜스타형 집에서 거의 1개월 동안 합숙하다시피 하면서 같이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팬이었던 아티스트와 첫 작업이었고, 그때 당시 앨범 작업 과정이 힘들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또 그걸 이길 수 있을 만큼의 재미와 배울 점이 있었다.
수많은 작업물 중 제일 애착이 가는 곡은.
앞서 말했던 크루셜스타 앨범 트랙 중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곡을 특히 애정한다. 또 내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하고 음악으로 수입도 안겨줬던 쇼미더머니5 곡들이 있겠다. 그리고 올여름 내 이름으로 낸 앨범이 있는데 모든 곡이 의미가 있지만 특히 ‘부모님께 (Feat. Jason Lee)’라는 곡의 분위기와 가사를 정말 좋아한다.
최근 작업하거나 기대할 만한 작업물이 있을까.
최근 발매됐던 신스 누나의 정규 2집. 난 ‘오늘도’와 ‘No Matter What’이라는 곡으로 참여했는데, 다양한 분위기로 신스 누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낸 앨범이다. 신스 누나 음악은 직설적으로 관통하는 가사와 표현 방식이 정말 좋다. 특히 내 곡은 아니지만 ‘마지’ 라는 곡은 다들 한 번씩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같이 곡 작업을 해보고 싶은 국내 아티스트가 있는지. 혹시 아나, 인터뷰를 보고 연락이 갈지.
지드래곤. 음악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변함없이 꼭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아티스트. 그리고 릴러말즈나 창모의 음악을 예전부터 좋아해서 같이 작업해보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 같다.
프로듀서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을까.
학생시절부터 30대가 된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곡을 많이 만들고 노래도 장르 가리지 않고 듣고 무엇보다 곡 스케치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완성곡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포트폴리오고 자신만의 무기가 된다. 그리고 주위에 많이 들려주고 공유해야 한다. 특정 소수를 제외하고 보통 우리 같은 사람들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니까 ‘나는 이런 곡을 만드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영업해야 한다. 잘 만든 곡이 많다고 해서 그것을 공유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또 다른 쪽은 유명한 프로듀서 또는 소속사한테 데모를 공유하는 것이다. 프로들도 사람인지라 들어오는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하다. 이게 창의적인 직업이다 보니 많은 곡을 짧은 시간에 소화하기 어렵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곡이 팔린다거나 좋은 인상을 남겨서 등용되는 경우도 많다.
마지막으로 유튜브를 통해 관련 정보를 주는 채널들을 보는 것이다. 워낙 유튜브가 요즘 잘 되기도 하고 현역 제작자들이 말하는 음악 제작 방식, 유통 구조 등 좋은 정보가 많이 공유된다. 그 안에서 일정한 지식과 필요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결국 음악은 혼자 방안에서 하는 게 아니다. 주변 사람과의 협업이 정말 중요하다. 다양한 아티스트, 프로듀서, 작곡가 등과의 교류를 통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
클레어 하우. 몇 번 같이 작업을 했었는데, 그 아티스트만의 매력과 중성적인 보이스 목소리가 미쳤다. 그냥 남자 같다는 게 아니라 듣기가 너무 좋고 개성도 있다. 아직 엄청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스트릿매거진 구독자들도 클레어 하우란 아티스트의 곡을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케이팝 장르에 좀 더 집중을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힙합과 알앤비를 위주로 해왔는데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주면 될 것 같다. 이미 케이팝 시장이 포화상태라 부딪히기 어렵겠지만 나라고 뭐 안될 거 있나 라는 마인드로 도전해 보려고 한다. 음악적인 스펙트럼도 넓혀보고 싶고.. 그리고 내 개인 이름으로 내는 작업물도 꾸준히 기회 될 때마다 만들어서 공개할 계획이고 아티스트 협업도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신형섭에게 키메이커란.
신형섭을 먹여 살려줄 수 있는 밥줄? 키메이커라는 존재가 없으면 나는 뭐 아무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의 원천이기도 하겠다. 내가 잘하는 것과 할 줄 아는 건 음악 하나고 앞으로도 더 쭉 내세우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런 것 같다. 음악이 없었으면 키메이커도 없었고, 음악이 아니었으면 그냥 답이 없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