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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THE STORY BEGIN

하이라이트레코즈의 수장이었던 팔로알토의 지난 10년간의 소회를 담은 이야기
그리고 그가 들려준 아티스트 팔로알토가 채워갈 또 다른 이야기.

하이라이트레코즈 창립 10주년을 맞음과 함께 대표 자리를 내려놓았다. 10년의 세월을 담은 싱글 앨범을 발매했는데, 앨범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Let the Story Begin’이라는 싱글 앨범을 냈다. SNS나 인터뷰 통해서 얘기하는 것보다 노래에 심경을 담아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인 것 같아서 이 곡을 준비했다. 여러 말보다는 이 곡을 들으면 사임에 대한 입장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자신의 감정이나 심경이 가장 많이 담긴 가사를 꼽자면?
3절에 ‘때론 난 과몰입해, 어쩌면 그게 날 여기에 있게 한 거지’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게 아마 내 감정을 가장 대변하지 않나 싶다. 곡 제목도 그렇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10년 동안 운영하던 회사의 대표직을 물러나는 것뿐이고, 이제 그냥 온전히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감정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가사 한 문장마다 신중하게 썼다.

 

가사 중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했다. 사람도 상황도. 그중 가장 많은 변화가 생긴 건 무엇보다 팔로알토 본인일 것 같은데, 10년 전과 지금의 자신 모습 중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점은?
정신적으로 더 단단해진 것 같다.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해봤으니까. 그걸 통해서 제일 바뀐 건 뭔가 웬만한 일에 겁내지 않는 마음이 생겼달까.

하이라이트레코즈의 대표이자 수장으로서 지낸 10년의 세월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은 무엇일까?
파노라마처럼 떠오른 기억 중에서도 한 장면을 고르라고 하면 그때그때 무대에 올라서 받은 에너지, 기분, 관객들의 분위기가 가장 많이 그려진다. 무대 위에 있을 때 창작의 에너지가 가장 많이 발현됐거든. 최근에 하이라이트레코즈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는데, 중간중간 과거 영상을 삽입했다. 예전 공연 영상을 보면 지금 공연할 때랑 바이브가 다르다.

 

대표가 갖는 무게감은 내려놓았겠지만, 새로운 고민이나 걱정이 생길 것도 같다.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있으니까.
확실히 대표직을 물러나고 책임의 무게가 줄어서 편한 점이 있다. 온전히 내 삶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이 커졌거든. 이제는 어떤 기대나 고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큰 법이잖아. 오랜 시간 음악 활동하면서 생긴 노하우랄까. 부담과 욕심은 내려놓고 매 순간 충실히 하는 게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것 같다.

 

10년을 끝으로 대표직을 사임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사실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에 대해서 수년간 혼자 고민했다. 지난 10년은 거의 회사 생각밖에 안 하고 살았다. 그런 점이 정신적으로 좋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는 너무 예민해지기도 하고 여유가 점점 없어지더라. 음악과 대표직을 사이에 두고 어떤 것을 관둬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작년 말에 결심이 섰다. 음악은 도저히 놓을 수 없는 행위였거든.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이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티스트는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집중하는 반면에 회사를 이끄는 대표는 마냥 자유로울 순 없지 않나. 어느 정도의 기준을 정해야 하고, 이익에 대한 창출이 있어야 회사를 운영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만큼은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지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다. 그 외적으로 회사 내 아티스트나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헤드인 내게 돌아오는 화살을 감당하는 게 고충이었다. 대표와 아티스트라는 범위 안에서 잘 조절해야 하는데, 어떻게 대처하고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

이제는 본업인 뮤지션으로서 더욱 집중할 수 있겠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지, 지금 작업 중인 곡이 있나?
올해는 개인 앨범에 대한 계획은 없다. 개인 앨범보다는 피쳐링을 엄청 많이 했다. 부탁하는 피쳐링은 거의 거절하지 않고 다 했던 것 같다. 개인 앨범 계획이 없으니까 피쳐링으로서 몇 곡까지 작업할 수 있는지 스스로 챌린지이기도 했지. (웃음) 음악 한 지 20년 가까이 됐는데 다양한 아티스트가 찾아준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가 영향력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내 재능으로 도움 주고 싶다.

 

팔로알토의 가사는 비난과 분노보다 삶에 대한 현실적인 감정선이 두드러져서 리스너들의 공감대를 사는 것 같다. 가사를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어떤 방향성을 설정해놓기보다는 당시 내 무드와 생각에 집중해서 가사를 쓰는 편이다. 그 분위기 속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1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30분이라는 제한 시간 안에 곡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완성한 곡이 ‘두고 가’였지. 제한 시간이 주는 압박도 있었을 것 같은데 평소에도 곡을 빨리 쓰는 편인가?
평소에 곡 작업 시간을 정해두고 만들지는 않으니까 나도 30분 안에 곡이 나올 수 있을까 궁금했다. (웃음) 프로듀서를 맡은 요시는 워낙 여러 앨범을 같이 작업했던 친구라 합도 잘 맞았지. 원래 작업 속도가 오래 걸리지는 않은 편이다. 요시와도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요즘 사회가 순간적인 것에 충실하고, 모든 것들이 빠르게 소멸해버리지 않나. 음악도 그 순간의 감정을 빨리 담아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것들이 내 창작의 원동력이기도 하고.

 

사이먼 도미닉, 염따, 딥플로우와 더콰이엇까지 84년생 래퍼들이 모인 다모임이 발매한 ‘아마두’와 ‘달려’ 등 내는 곡마다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또 한 번 뭉칠 계획은 없나?
워낙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한 친구들이어서 자주 연락은 하지만 각자 행보가 있으니까 아직 뭉칠 계획은 따로 없다. 지금은 다들 앨범 준비와 개인 활동으로 바빠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을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즐겁게 작업한 음악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축복이다.

 

다모임이 탄생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모임을 할 수 있었던 건 염따의 공이 가장 크다. 염따가 상대적으로 잘 안 풀리다가 작년부터 떡상하기 시작했다. (웃음) 친한 84년생 술 모임에서 종종 술을 먹다가 이렇게 술만 먹을 게 아니라 같이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마침 그날이 염따 ‘돈 Call Me’ 음원이 차트인도 못하다가 역주행한 날이었다. 그때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염따는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웃음) 잊지 못할 날이지. 아무튼 염따의 제안으로 다모임이 탄생했고, 다들 친하니까 촬영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우리도 이제 아재라서 그런지 망가지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서 더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다.

‘쇼미더머니4,’ ‘쇼미더머니777’에 이어 최근 방영을 시작한 ‘쇼미더머니9’에 프로듀서로 참여 중이다.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쇼미더머니4’ 때는 매주 방송 촬영을 하는 게 처음이라 순식간에 지나갔던 것 같다. ‘쇼미더머니777’은 이전에 한 번 해봤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 함께 프로듀서를 맡은 코드 쿤스트와 호흡이 좋았고 팀 멤버들과 분위기도 좋아서 화기애애하게 촬영했다. 덕분에 좋은 음원 성적도 거둘 수 있었지. 팀 소속 아티스트들이 모두 잘되고 방송이 끝난 후에도 계속 만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쇼미더머니777’은 유독 좋은 기억만 남은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섭외 요청이 왔을 때도 코드 쿤스트와 같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제작진도 역시 코드 쿤스트와 하길 원해서 잘 됐다 싶었지.

 

프로듀서의 평가로 누군가는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아슬아슬한 승패의 줄다리기를 하는 래퍼들을 직관하면서 안타까웠던 적은?
‘쇼미더머니4’ 때는 1차 예선에서 몇 초 컷으로 냉정하게 탈락시킨 적도 많다. 못하면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뿐 이었지.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다. 팀이 정해지기 전에는 특별한 감정이 들진 않지만, 함께 추억을 쌓고 고생한 팀원이 탈락할 때는 마음이 좋진 않다. 전우애 같은 게 생긴달까. 한두 살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지 이번 ‘쇼미더머니9’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모두에게 소중한 기회인데, 한 명씩 떨어뜨릴 때마다 탈락자들이 집에 갈 때 씁쓸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 약해지기도 하더라.

 

심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경쟁에 포커싱을 맞춘 방송의 특성상 실력과 더불어 캐릭터를 가진 아티스트가 더 잘될 수 있다. 탈락한다고 해서 앞으로 이 사람의 음악이 비전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다. 랩은 잘하더라도 방송에 비치는 캐릭터가 약할 수도 있고 혹은 ‘쇼미더머니’에 안 나오고 자기 음악을 만들어서 인정받는 게 더 나은 아티스트도 있다.

 

앞으로 ‘쇼미더머니9’ 관전 포인트를 살짝 스포해준다면?
어우, 이거 조심스러운데. (웃음) ‘쇼미더머니’가 9번째 시즌까지 이어지면서 이미 나올만한 사람은 다 나온 느낌인 데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거나 이전 ‘쇼미’를 통해 주목받은 사람이 다시 나오면 그만큼 소비되는 부분도 많아서 이런 점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결국 ‘쇼미더머니’는 실력과 매력을 갖춘 참가자가 나오는 게 흥행하는 길이니까. 그런데 막상 촬영해보니까 이전에 보지 못한 뉴비도 등장하고, 기존 참가자들 역시 새롭게 변신한 모습이 많아서 시청자들이 볼거리가 많을 것 같다. 이번 ‘쇼미더머니9’이 흥행할 것 같은 긍정적인 예감이 있다.

 

최근 눈에 띄는 후배나 신인 래퍼를 추천한다면?
힙합씬안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언더성수브릿지(UnderSeongsuBridge)라는 크루의 365릿(365lit)이나, 주피터(JUPITER), 토이고(toigo), 웹(Web.), 벌스데이케잌(BIRTHDAYCAKEiii), 레이신(RAYSHIN) 라는 아티스트들이 있는데 음악을 정말 잘 만들고 젊은 에너지가 있다. 또 멈블한 트랩 비트에 랩을 하는 아우릴고트(Ourealgoat)라는 친구는, 사운드적으로는 요즘 힙합 느낌인데 가사의 깊이가 남달라서 차별성이 있다. 애쉬비는 국내 여자 래퍼 중에 섹슈얼한 가사를 정말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데 음악까지 좋아서 요즘 즐겨 듣고 있다.

힙합은 다양한 개성과 자유를 존중받는 장르임에도 꽤 많은 잣대와 리스너들의 매서운 평가가 따른다. 비판이 아닌 비난에 부딪혔을 때도 많지 않나
비단 힙합씬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평가가 엄격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이슈에는 엄격한 잣대가 따르는 것이 타당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맞지만, 그렇지 않은 일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때도 더러 있다. 댓글창을 보면 댓글을 쓰는 네티즌끼리도 서로 싸움이 일어난다. 사회가 과열된 것 같다. 솔직히 얘기하면 무조건적인 비난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해되는 점은 코로나19를 비롯해서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일들이 많이 겹치다 보니 사람들이 점차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익명이 보장된 곳에 다 쏟아내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글이라는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용납받을 수 있는 행위는 아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거지. SNS를 하다가 ‘누군가를 평가하다 보면 그 사람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 글귀를 봤는데 이 말이 요즘 시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악플을 다는 사람이나 특히 알려진 사람한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상대를 쉽게 평가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거든. 상대의 말투나 행동,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다 보면 그 사람의 장점은 보기 힘들어지잖아.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는 건데 자기 기준에만 다 맞출 순 없다. 서로 관용을 베푸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아티스트로서 팔로알토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인류애를 찾고 싶다. 내가 음악을 시작하고 음악을 만드는 매력에 빠졌던 건 각박하고 치열한 삶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게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공부, 대학, 취업 같이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힙합 아티스트들은 음악을 통해 ‘너는 그런 데 갇혀 있을 필요 없어, 그냥 삶 자체를 즐기고 감사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펼쳐라. 누가 뭐래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게 나의 원동력이었지. 힙합 음악의 매력은 약자 취급을 받는 언더독한 사람들이 성공해서 사회가 무언의 압박으로 정한 기준을 깨고 증명한다는 거다. 돈 자랑하는 음악이라거나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라고 힙합 래퍼를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래퍼들이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나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 재능으로 이렇게 이뤘어,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용기를 주기도 한다. 래퍼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그 음악을 듣고 영향받은 누군가는 꼭 음악이 아니라도 자신의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용기를 얻어서 음악을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내 음악을 들으면 힘이 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다. 인류애를 찾고 싶다는 것도 거창한 뜻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거다. 내가 만든 곡이라도 누군가에 대해 공격적인 가사로 내뱉은 곡은 잘 안 듣게 되더라. 결국엔 부메랑처럼 돌아오거든.

EDITOR HWANG SO HEE
PHOTOGRAPHER KIM HA RU
STYLIST AHN DOO HO
HAIR·MAKEUP LEE EUN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