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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퀴어 영화 추천 5

사랑에는 장르가 없다. 사랑은 말 그대로 사랑일 뿐이다. 국경도, 나이도 초월한다는 사랑은 성별에는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 관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동성애를 용납하지 않는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동성애를 중범죄쯤이나 취급한다. 교육, 문화 수준은 높아지고 있지만, 인간과 본성에 대한 이해와 관용 점점 도태되어 가는 듯하다. 동성애를 옹호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원색적인 비난이나 차별은 지양하길 바란다. 그들의 사랑을 그저 내버려 두자.

 

현실에서 외면받는 동성애를 그린 영화 다섯 작품을 꼽았다.
여느 사랑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를 아래 작품에서 만나보자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영원히 그럴거야. 평생 동안”

여느 소녀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 ‘아델’이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스친 ‘엠마’를 만난 후 서로에 대해 강한 끌림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문학을 사랑하는 소녀 아델이 미술을 전공한 엠마와 만나고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 하얀 캔버스 안에 녹여난다.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무색하리만큼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다. 아델 역의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와 엠마 역의 레아 세이두의 현실적인 연기와 빨려 들어가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아름다운 영상미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짙은 여운을 남긴다.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노골적인 성애 장면이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지만, 위대한 러브스토리라는 평을 얻으며 2013년 칸 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감독과 배우 모두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은 작품이다.

캐롤

 

“나를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거스를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두 여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1950년 시대적 분위기를 녹여내기 위해 우아한 레트로풍 의상과 헤어, 소품은 물론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로 질감을 활용해 클래식한 영상미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들의 첫 만남은 일상적인 장소인 백화점에서 이뤄진다. 맨해튼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테레즈’와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방문한 ‘캐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금기시된 이들의 사랑은 매몰찬 현실 앞에서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바라본다. 타인이 자신들의 사랑을 부정하더라도, 그들은 진실하게 서로의 사랑을 인정한다. 어떤 제약 앞에서도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는 진짜 사랑을 보여준 캐롤과 테레즈. 특히 캐롤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섬세한 연기는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만큼 또다시 보고 싶게끔 만든다.

아가씨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한국 대표적인 퀴어 영화로 손꼽힌다. 귀족 아가씨 히데코를 보필한다는 명목으로 심어진 하녀 숙희, 그리고 이들을 강압하고 관찰하는 인물인 이모부 코우즈키와 백작의 인물 관계로 이야기를 흘러간다. 영화는 3부로 구성된다. 숙희 시점의 1부와 히데코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2부, 그리고 히데코와 숙희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서 탈출하며 서로의 합을 보여주는 3부. 영화 아가씨는 인물로 관점이 바뀌는 동시에, 영화 속 반전의 반전인 픽션을 곳곳에 넣어 기존 클리셰를 뒤집었다. 이 작품은 강압적인 남성성을 다소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표출한다. 이러한 남성성은 코우즈키의 지하실, 음란한 서적, 히데코의 칼, 히데코를 학대하던 방물과 같은 오브제와 미장센에 여실히 녹여난다. 꽤 음침하고 기이한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스토리 중간중간 실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위트 있는 대사와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배우들의 열연은 한국 퀴어 영화 역사에 획을 그은 작품이라 활 수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각색해 2018년 개봉한 영화이다. 1983년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포스터처럼 청량하고 뜨거운 여름날에 시작한 순수한 첫사랑을 그려나간다. 평범한 듯 조금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17살 소년 ‘엘리오’의 집에 24살 청년 ‘올리버’가 엘리오의 아버지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온다. 다른 듯 같았던 이들은 섬세하고 차분하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마음에 몰입하는 감정선, 사랑의 절정에 달하고, 이별을 겪는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을 보는 이들의 공감을 극으로 끌어올린다. 여행처럼 짧지만 강렬한 엘리오의 첫사랑은 현실이라는 문턱 앞에 막을 내린다.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지만, 영화 마지막 신에서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엘리오의 감정 연기는 어떤 화려한 특수 효과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인상 깊다. 영화의 여운을 더하는 매력적인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를 관람한 후 다시 한번 음악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뒤돌아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영화 ‘기생충’과 칸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수상의 영광은 기생충에 돌아갔으나,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했다. 이후 봉준호 감독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감독 셀린 시아마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기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당신이 받았어야 했다”고 전한 바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와 그가 모르게 엘로이즈의 결혼식 초상화를 완성해야 하는 화가 ‘마리안느’에게 다가온 영원히 꺼지지 않을 사랑의 기억을 담은 영화이다. 영화는 시선의 시작과 끝에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를 관찰하는 마리안느의 시선에서 포즈를 취하며 그를 바라보는 엘로이즈의 눈 맞춤에 이들은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이들이 피워낸 사랑의 불꽃은 서서히 타올라 영원히 지속할 것만 같다. 이 영화의 재미난 점은 영화 속에서 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을 지워낸 그 자리에는 오로지 여성과 여성만이 존재한다. 18세기 당시 주체가 되지 못한 여성 예술인에 대한 애환이 담겨있다. 조금은 무겁게 느낄 수 있는 스토리를 탄탄한 연출력과 각본으로 유려하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