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_REST IN PRIDE : MISHKA
커다란 눈알에 새파란 홍채 그리고 빨갛게 선 핏줄의 로고를 기억하는가?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반에 스트릿 브랜드 옷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유명했던 미쉬카. 그 충혈된 눈으로 2000년대를 뜨겁게 달군 그 브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잊혀졌고 지금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쉬카의 과거 걸어왔던 길과 지금 그들의 모습을 함께 만나보자.
미쉬카의 시작
미쉬카는 2003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미하일 보트닉(Mikhail Bortnik)과 그렉 리베라(Greg Rivera)에 의해 설립됐다. 2만 달러의 자본으로 여느 스트릿 브랜드가 그렇듯 그래픽 티셔츠 제작으로 시작됐고, 이후 미쉬카는 티셔츠를 포함해 재킷, 아우터, 모자, 가방 등 탄탄한 구성을 가진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미쉬카는 팝업 및 극소수의 샵 입점 판매로 운영하다가 2007년에 웹 사이트가 만들어졌고, 2009년 정식 플래그쉽스토어를 오픈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브랜드 시작에 쓰였던 2만 달러의 자본은 미하일이 폭행 사건 합의금으로 받은 돈이었다.
뚜렷한 색깔
미쉬카는 힙합, 펑크, 스케이팅 등 서브컬처와 만화나 영화, 장소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컬렉션을 주로 선보였다. 형형색색 색상과 그로테스크하지만, 장난기 넘치는 강렬한 프린팅은 다른 브랜드와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유니크함을 자랑했다.
미쉬카는 충혈된 눈알의 Keep Watch, 낙서하듯 그려낸 Bear Mob, 독사와 곰을 합쳐 형상화한 Death Adder 등이 미쉬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로고가 되었다. 이외에도 Kill With Power, Cyco Simon 등 다양한 시그니처 그래픽을 만들어 냈다. 또한 기본 로고에 장난스러운 요소를 섞고 변형시켜 원본을 토대로 의류뿐 아니라 장난감, 스케이트보드 덱, 라이프스타일 용품, 가구 등 다양한 물리적인 물체에 독창적인 예술을 적용해 제공했다.
그들이 행했던 콜라보 또한 일반적이지 않고 그들의 아이텐티티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미쉬카만의 것을 행했던 그 곤조 있는 에티튜드가 그 당시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된다.
음악
미쉬카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악 시장에서도 활동했었다. 2007년 미쉬카는 패션 및 음악을 다루는 ‘The Bloglin'(현재 삭제됨)을 시작했고, 자력으로 성공할 수 없었던 신생 아티스트를 소개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서포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미쉬카는 밴드캠프(Bandcamp)에서 수많은 믹스테이프를 호스팅했다. 신진 예술가들에게 녹음 비용이나 기타 재정적인 지원은 하지 못했으나 미쉬카는 그들에게 무료 장비를 제공하고 PR 담당자 역할을 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쉬카와 2개의 믹스테이프를 발매한 Das Racist의 정규 앨범 ‘Relax’는 발매 직후 아이튠즈 힙합 및 랩 차트와 빌보드 Heatseekers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업적을 이뤘다. 모든 아티스트가 Das Racist만큼 성공할 수는 없었지만 미쉬카는 커리어를 필요로 하는 뮤지션이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새로운 브랜드
미하일은 어느 순간 미쉬카가 수많은 스토어와 몰에 입점하면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과 방향을 수정하려고 했다. 브랜드가 스토어에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미하일은 미쉬카가 가졌던 공포영화, 인디 록, 펑크 요소를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없었던 이유가 컸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미하일은 새로운 의류 라인인 ‘사이킥 하트(Psychic Hearts)’을 런칭했다. 새로운 브랜드는 독창적이고 화려한 그래픽은 유지하지만, 미시카와 대비되게 자극적인 문구나 이미지는 제외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무드를 적용했다. 사이킥 하트는 한때 반항적이고 매니아틱한 티셔츠를 좋아했으나 세월이 지나며 그런 것들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브랜드는 만들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조용히 사라졌다.
NFT
2021년 12월, 미쉬카는 18년 동안 미쉬카가 사용한 패턴이나 이미지를 기반으로 6,969개의 눈알 로고로 NFT를 발행했다. 또한 이번 작업은 Buff Monster, LAmour Supreme, Frank Kozik, Mark Dean Veca 등과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와 함께했다. 브랜드 창립자인 미하일은 ‘시대에 맞춰 우리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건 자연스러운 진행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이 밖에서 셔츠나 모자에 우리의 로고를 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이 들었겠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런 의미는 없어진다.’라고 덧붙이며 이번 NFT 진행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는 미쉬카가 오래된 팬들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나름 그들만의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현재
2000년대 중반의 오베이, 에이라이프, 더 헌드레드, 크룩스앤캐슬 등 많은 스트릿웨어 브랜드가 그러하듯 사실상 미쉬카도 전성기를 맞이한 시점부터 브랜드의 하입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팍썬(Pacsun)이나 주미스(Zumies)와 같은 큰 규모의 셀렉샵에 입점하며 어디서든 의류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서브컬처의 사람들이 애호했던 그 브랜드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알려지며 브랜드 입지를 넓혔고 금전적으로 더 좋은 상황으로 되었다. 하지만 그게 몰락의 원인 중 하나였다. 미쉬카의 핵심 팬층이 대거 떠난 것이다. 실제로 미하일도 브랜드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을 갔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미쉬카 코리아가 2020년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다. 미쉬카 뉴욕과 코리아에서 취급하는 제품이 전혀 다른 것을 봤을 때 라이센스 자체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 미쉬카 코리아는 미쉬카가 가지고 있던 DNA를 이었는가? 내 대답은 ‘No’다. 라이센스를 넘긴 그 순간부터 브랜드는 변질됐다고 본다. 물론 그들이 가진 사정이 있겠지만 미쉬카가 왜 이런 모습을 관여도 안 하고 방관하는지 개인적으로 이해가 가진 않는다. 현재 미쉬카 코리아의 컬렉션을 보면 국내 다른 기성 브랜드와 다를 것 없는 상업적인 디자인으로 수많은 10, 20대 인플루언서를 통해 광고하며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미쉬카 코리아 인스타에 들어가 태그된 사진들을 보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미쉬카만의 그로테스크하고 장난기 넘치는 그 오리지널 디자인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또 다른 아쉬움을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패션 시장과 트랜드의 변화로 미쉬카 뉴욕은 2000년대 영광의 시절을 떠나보내야 했지만, 현재도 그들만의 것을 고집하며 여전히 의류뿐만 아니라 예술 쪽에서도 다양한 작업을 지속하는 미쉬카 뉴욕을 응원한다. 그리고 미쉬카 코리아는 미쉬카만의 본래 특성을 살려 한 번쯤은 컬렉션을 내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그럼 기쁜 마음으로 티셔츠 한, 두 개쯤 구매할 의향은 있다.